약 없이 혈압 낮추기 (식단, 체중, 운동)
약국에서 처방전을 받다 보면 종종 반가운 순간이 있습니다. 지난번까지 드시던 혈압약이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진 경우인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활짝 웃으면서 "이번에 혈압약이 줄었네요? 어떻게 하셨길래 이렇게 좋아지셨어요?"라고 여쭤봅니다. 그러면 환자분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운동 이야기, 식단 조절 이야기를 꺼내시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혈압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도 충분히 약을 줄이거나 끊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유전과 생활습관, 고혈압의 두 얼굴
고혈압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저희 집안이 다 혈압이 높아서요"라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실제로 고혈압의 약 40~60%는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특수한 유전자 변이로 인한 고혈압은 전체의 20~3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런 경우엔 약물 치료가 필수적입니다(출처: 질병관리청).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절반 정도는 유전과 무관하게 생활습관만으로 생기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저도 약국에서 비만하신 분들의 처방전을 확인할 때 혈압약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보곤 하는데,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탄수화물 과다 섭취, 운동 부족,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혈압이 오르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쉽게 말해 내 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약을 먹을지 말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양파즙이나 비트 같은 특정 음식만으로 혈압을 낮추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양파에 들어있는 퀘르세틴(quercetin)이라는 성분으로 혈압을 낮추려면 하루에 생양파 20개를 먹어야 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결국 운동과 식습관 전반을 바꾸는 게 핵심입니다.
체중 감량, 혈압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
제 친구 중에 40대 남성이 있는데, 키 183cm에 몸무게가 120kg이 넘었습니다. 수축기 혈압(systolic blood pressure)이 170mmHg까지 올라가서 심각한 상태였죠. 여기서 수축기 혈압이란 심장이 수축할 때 동맥에 가해지는 최고 압력을 뜻합니다. 정상 범위가 120mmHg 미만인 걸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였습니다.
그 친구는 요식업을 하면서 면류와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었고, 조리하면서 중간중간 간식도 계속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국수를 끊고, 조리 중 간식 먹는 습관을 없애라고 조언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두 달 만에 10kg 이상 빠졌고, 본인도 놀라면서 더 열심히 식단 조절을 했습니다. 총 4개월 동안 30kg를 감량했고, 지금은 약 없이 수축기 혈압이 120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체중이 빠지면 혈압이 떨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체중 감량은 체내 수분량과 혈액량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의미이고, 심장이 펌프질해야 할 양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도 식습관만 바꿔도 수축기 혈압을 8~14mmHg 정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체중 감량까지 병행하면 그 이상으로 떨어뜨릴 수 있고요.
DASH 식단, 혈압 관리의 핵심 전략
그렇다면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의학적으로 검증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DASH 식단입니다. DASH는 '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의 약자로, 고혈압을 막기 위한 식사 접근법을 의미합니다. 지중해식 식단과도 비슷한데,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통곡물 섭취: 흰 쌀밥 대신 현미, 귀리, 통밀 같은 섬유질이 풍부한 곡물을 선택합니다.
- 단백질 선택: 붉은 고기 대신 생선, 닭고기, 오리고기 같은 흰 살 고기를 주로 먹습니다.
- 채소와 과일: 샐러드, 쌈, 생채 같은 야채를 풍부하게 섭취하고, 칼륨(potassium)이 많은 과일을 간식으로 먹습니다.
- 저염식: 소금 간을 최소화하고, 식초나 올리브 오일로 맛을 냅니다.
- 간식 조절: 단 음료수, 과당이 든 음료, 가공 간식을 끊고 견과류나 블루베리 같은 걸로 대체합니다.
저도 약국에서 환자분들께 이런 식단을 권해드리는데, 한국 사람들은 사실 DASH 식단과 비슷하게 먹는 편입니다. 다만 문제는 국과 찌개의 짠 국물, 그리고 김치 같은 젓갈류입니다. 이런 음식들을 최대한 싱겁게 먹고, 국물은 건더기 위주로만 먹으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DASH 식단을 잘 지키면 자연스럽게 저염식이 되고, 칼륨 섭취는 늘어나면서 나트륨 섭취는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단을 실천하는 분들은 정말 체중도 빠지고 혈압약도 줄어드는 걸 직접 확인했습니다. 반대로 실천하지 않는 분들은 약이 유지되면 다행이고, 점점 늘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운동과 술, 혈압에 미치는 숨은 변수들
식단만큼이나 중요한 게 운동입니다. 사실 고혈압은 당뇨보다도 운동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질환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유산소 운동을 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기능이 개선되면서 혈압이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저도 환자분들께 "하루 30분씩 빠르게 걷기만 해도 효과가 있다"고 말씀드리는데, 실천하는 분들은 정말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술입니다. 술은 일시적으로 혈관을 확장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체액량이 늘어나면서 장기적으로는 혈압을 올립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얼굴이 붓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혈압 환자분들은 술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하루 두 잔 이내로 제한하는 게 좋습니다. 소주든 맥주든 와인이든 한 잔에 들어가는 알코올 함량은 6~9g으로 비슷하니까, 종류와 상관없이 두 잔 이내로 마무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도 혈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도 약국에서 혈압이 갑자기 오른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내 몸을 얼마나 잘 돌보느냐가 혈압 관리의 핵심이라는 걸 느낍니다.
고혈압은 침묵의 병이라고 불립니다. 증상이 없어도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도 고혈압으로 사망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약국에서 환자분들이 혈압약을 줄여오실 때마다 정말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생활습관 개선은 힘들지만, 그만큼 확실한 효과가 있으니까요.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유전적 요인을 의심하고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식단과 운동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mYyXw7N6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