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해소법 (미리 식사, 과당 효과, 톨페남산)
여러분은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속이 뒤집혔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 역시 약국에서 근무하며 "빨리 술 깨는 약 없어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직접 찾아보고 경험한 것들을 환자분들께 알려드렸는데, 최근 의학 연구 결과들을 보니 제가 알던 상식 중 일부는 완전히 틀렸더군요. 솔직히 물만 많이 마시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숙취 증상 완화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미리 식사가 가장 확실한 숙취 예방법일까?
숙취의 주범은 알코올 자체가 아니라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라는 독성 물질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체내에서 에탄올이 이 물질로 빠르게 분해되는데,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두통, 구토, 몸살 같은 숙취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쉽게 말해 에탄올은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그 다음 단계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죠. 특히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분들은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숙취를 줄일 수 있을까요? 2020년 연구에 따르면(출처: 미국국립보건원 NIH) 음주 전 700칼로리 이상의 식사를 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50% 이상 감소했습니다. 성인 남성 기준으로 한 끼 제대로 된 식사량인데, 여기서 핵심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중 무엇을 먹든 상관없다'는 점입니다. 1997년 남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진이 고지방, 고탄수화물, 고단백 식사를 각각 비교했을 때 세 가지 모두 동일한 효과를 보였거든요.
제가 직접 경험해봐도 공복에 술을 마신 날과 저녁 식사 후 술자리를 가진 날의 다음 날 컨디션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 이유는 초회 통과 대사(First-pass metabolism) 때문인데, 음식이 위에 머물면서 알코올 흡수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위에 있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1차로 에탄올을 분해하기 때문입니다. 간도 한꺼번에 몰려드는 알코올보다 천천히 들어오는 알코올을 훨씬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요. 여러분도 술자리 전에는 반드시 식사를 든든히 하시길 권합니다.
과당이 숙취에 효과 있다는데, 정말일까?
배즙이나 꿀물이 숙취에 좋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이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과당(Fructose)은 간에서 알코올 분해를 돕는 조효소(Coenzyme) 재생을 촉진하기 때문이죠. 조효소란 효소의 작용을 돕는 보조 물질로, 평소에는 에너지를 만드는 데 쓰이지만 과당이 들어오면 '에너지가 충분하니 알코올 분해나 도와주자'며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쪽으로 몰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1976년 연구에서는 포도당(Glucose)과 과당을 비교했는데, 포도당은 술 먹기 전에 투여하든 술 먹을 때 동시에 투여하든 숙취 해소에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반면 과당은 확연한 효과를 보였죠. 포도당은 전신에서 작용하지만, 과당은 간에서만 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약국에서 일하면서 배즙을 권해드렸고, 실제로 효과를 봤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과당이 풍부한 음식으로는 배, 사과, 포도 같은 과일과 꿀, 그리고 액상과당이 들어간 콜라 같은 음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첫째, 과당은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바꾸는 과정은 빠르게 하지만,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최종 분해하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래서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꿀물을 마셔봤자 효과가 거의 없고, 술 마시기 직전이나 마시는 중에 먹어야 합니다. 둘째,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가 없는 아시안 플러시 체질(술만 마시면 얼굴 빨개지는 분들)은 절대 과당을 먹으면 안 됩니다. 에탄올만 빨리 분해돼서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오히려 더 쌓이기 때문이죠. 셋째, 과당과 알코올 모두 지방간을 유발하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술 깨려고 과당을 자주 섭취하면 간이 이중으로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엔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끌려갔을 때 과일 한두 개 정도 먹고 가거나, 술 마실 때 콜라 한 잔 정도 곁들이는 건 괜찮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숙취를 해결하려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과당보다 미리 식사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톨페남산, 정말 효과 있는 숙취 해소제는?
톨페남산(Tolfenamic acid)은 1983년 임상 연구에서 숙취 증상을 84% 감소시켰다는 결과를 보인 유일한 전문의약품입니다. 이 약은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로, 쉽게 말해 우리가 병원에서 엉덩이에 맞는 진통제와 같은 계열이죠. 톨페남산은 TGE2, TXB2 같은 염증 매개 물질을 줄여 두통, 구토, 몸살 같은 숙취 증상을 완화시킵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직접 분해하는 건 아니지만, 숙취로 인한 고통은 확실하게 줄여주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약을 지금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는데 모두 현재 유통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다른 진통제는 어떨까요? 나프록센, 이부프로펜, 아스피린 같은 일반 진통제들도 연구가 있긴 했지만, 톨페남산만큼 명확한 효과를 입증한 자료는 없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술 마신 다음 날 나프록센을 먹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임상적으로는 위약과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숙취로 고통받는 분들께 권할 수 있는 방법은 병원에 가서 일반 진통제 주사를 맞고, 구토가 심하면 항구토제(메토클로프라마이드)를 함께 처방받고, 탈수와 저혈당 때문에 수액을 맞는 정도입니다. 진통제는 위장과 콩팥에 부작용이 있으니 위장약을 함께 복용하고,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합니다. 물론 제가 볼 때 톨페남산이 다시 유통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숙취 해소 제품들도 살펴봤습니다. 키스립(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 과립), 컨디션, 여명808, 상쾌환, 모닝케어 같은 제품들이 시중에 많이 팔리는데요. 이 중 키스립은 자체 임상 보고에서 꽤 좋은 결과를 보였지만, 이중맹검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정향 추출물(클로비놀)도 소규모 연구에서 숙취를 43% 감소시켰다는 결과가 있지만, 역시 대규모 연구는 부족합니다. 제가 약국에서 이런 제품들을 권했을 때 환자분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효과 있다고 하셨고, 어떤 분은 별로라고 하셨죠. 결국 개인차가 크다는 뜻입니다.
- 숙취 해소에 가장 확실한 방법: 음주 전 700칼로리 이상 식사 (탄단지 무관)
- 과당(배즙, 꿀물, 콜라)은 술 마시기 직전 섭취 시 효과 있지만, 아시안 플러시 체질은 금지
- 물, 커피, 포도당 수액은 숙취 증상 완화에 효과 없음 (탈수, 저혈당에는 도움)
- 톨페남산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현재 국내 미유통
- 숙취 해소제(키스립, 컨디션 등)는 근거 부족하나 개인차 있음
결국 제가 약국에서 일하며 느낀 건, 숙취 해소제나 민간요법에 기대기보다는 애초에 술을 적게 마시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도 있죠. 그럴 땐 반드시 식사를 든든히 하고, 과일 한두 개 정도 먹고 가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는 건 숙취 자체를 줄이진 못해도 배가 불러서 술이 덜 들어가고, 화장실을 자주 가면서 배출도 빨라지니 나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과학적 근거는 아니지만,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숙취 해소제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오히려 술을 더 마시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2023년 남캘리포니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출처: Addictive Behaviors 저널) 숙취 해소제를 사용하는 청년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음주량이 1.24배 더 많았고, 알코올 사용 장애 위험도 1.86배 높았습니다. 저 역시 약사로서 이 부분이 늘 고민입니다. 숙취로 고통받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게 더 많은 음주를 부추기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거든요.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는 꼭 당부드립니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만 이 방법들을 활용하시고, 술을 마시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RdQcM4DUdg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230116/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306460323001247.jpg)